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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나는 또다시 잠들지 못하고
사진첩 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왔던 일이었다
내 휴대폰 속에서 차마 너를 지우지 못하고
다시 꺼내 볼 용기도 없어 갤러리를 두 달 동안이나 방치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나는 너를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기 전 한 장 한 장 사진을 찬찬히 바라봤다
이 사진은 우리의 마지막 사진이 될 터였다
그러다 문득 벼락같이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 사진 속 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너는 대부분이 무표정했고
어쩔 때는 웃어보였으나
눈은 무감각했다
사진 속 나는 온 몸으로 행복하다 외치는데
너는 시종일관 나른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 너는 이미 이 때 나를 떠나고 없었구나
내 옆엔 빈 껍데기만 남아있었구나
그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웃지 않는 너
신이 난 나
무감각한 너
사랑에 절어있는 나
이 일그러진 기묘한 분위기
나만 몰랐던 우리의 이별여행이었구나
나는 너의 껍데기를 붙들어매고 아등바등 했었구나
이런 네가 내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었구나
뭘 몰라도 한참은 몰랐다
사진 속 너는 이미 남이었다
마리오네트처럼 내가 웃으라면 웃고
즐거워하라면 즐거운 척 했구나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에서조차
기뻐하는 표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는 정말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놓으면 영영 놓아지는 관계였던 것이다
언제부터 혼자이고 싶었냐는 내 물음에
처음부터라고 대답했던 너를 잘 이해 못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너는 내 옆에서 행복하지 않았구나
이제 너를 보내주려한다
다시금 너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실례일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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