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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육십하고도 일세 생일
이상하다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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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은 환갑 기념 해외 여행을 보내드린다는데, 엄마가 비행기를 못타게된 관계로 아주 머리가 아팠다.
그냥 편하게 해외여행 결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어째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엄마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엄마는 처음엔 그냥 우리 가족끼리 고즈넉하게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아쉬운 것 같아, 이모도 부를까? 당숙도 부를까? 하니 엄마가 슬그머니 물어본다.
좀 많아도 돼?
당연히 되지, 우리 집안 잔치할까?
예순이 되었지만 어째 아직 소녀같은 엄마는 그럼 좋지! 하고 베시시 웃었다.
며칠이 지난 뒤 일을 하고 있는중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니, 아빠랑 얘기 한번 해봤는데... 요즘 무슨 환갑에 잔치녜. 너네 부담스럽게스리...
뭐가 부담스러워~? 난 괜찮아. 원래는 엄마 아빠 유럽여행 보내주려고 했던거야. 이서방도 돈 아끼지 말랬어.
남편을 팔아 혹시 부담스러울까 하는 엄마를 한참 안심시키고는
엄마 원래 500만원짜리 해외여행이었어 식사 한끼면 싸게 먹히는거지!
마음같아서는 고급 호텔에서 파인다이닝 해주고싶은데 엄마 취향이 그게 아니라서 안해주는거야.
가만히 말도 없이 듣고 있던 엄마는 그치? 내가 이정도는 받아도 되지? 너네 아빤 괜히 난리야~~ 하며 아빠 뒷담을 깐다.
역시 울엄마 속으로는 그냥 좋고 신났는데 아빠가 브레이크 걸어서 짜증났었나보다.
내가 편들어주니 누구도 부르니 마니 몇명이 올건지 신나서 한참 얘기를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소고기집에 예약을하려 했으나 남편이 반대를 했다.
친척 어른들 모시고 하는 자리인데 그냥 고깃집 느낌이라 폼이 안난단다.
사공이 여럿이니 점점 배는 산으로 가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꽤 괜찮은 레스토랑의 토요일 점심 예약은 한달 전에 해야한다는걸 그때 깨달았다.
생일을 2주 앞두고 인원도 다인원에 제일 붐빌 시간대를 예약하려고 하니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후보군의 90%에서 퇴짜를 맞았다.
결국 엄마 집 근처 경복궁 한옥마을점에 30명을 예약했다.
우리 가족과 일가친척들 중 엄마가 부르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부르게 했다.
우리 항렬에서는 내가 제일 첫번째로 환갑을 치르게 되어 엄마도 누구 부를지 은근 기싸움을 했을 것이다.
직계 친한 친척만 불렀는데도 30명이 넘게 엄마의 생파(?)에 참석해주셨다.
예약할 때 가장 비싼 한정식 코스 + 고기 추가하여 미리 오더를 냈고,
오마카세 느낌나는 한정식 코스와 배 채울수 있는 고기까지 구워 먹으니 젊은 친구들도, 어르신도 만족도가 높았다.
엄마는 얼마전에 이날을 위해 백화점에서 구입한 100만원이 넘는 원피스와 30만원짜리 구두, 아빠가 사준 금 팔찌와 목걸이, 지난 생신날 내가 선물한 루이비통 백을 들고 아주 휘향찬란한 자태로 등장했다.
전날에 받은 네일아트와 아침에 샵에 들려 머리와 화장도 했다.
엄마가 이 날 엄마가 가진 가장 비싸고 좋은걸 걸쳤다.
경복궁에 원래 있던 서비스는 생일자에게 미역국 반상을 주는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직원분들 대여섯분이 오시더니 엄마에게 티아라와 요술봉, 반지 풍선등 여러 악세사리를 채워주고
여러 가족들에겐 폭죽과 소품들로 우리를 한껏 꾸미시더니 엄마를 일으켜세워 다같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소감도 묻고, 사위와 함께 우리가 따로 준비한 케이크 커팅과 꽃바구니 전달식도 하고 , 내쪽에서 답가도 하고 ...
갑자기 사회자가 되셔서 식 진행을 해주셨다. (팁만해도 이십은 나갔다)
나는 엄마가 이런 시끄럽고 남사스러운 것들을 싫어하고 창피해하고 하실줄 알았으나
이게 웬걸 엄마는 너무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사진만 정말 백장은 찍은것 같았다. 말그대로 잔치였다.
사진 속 엄마는 단 한컷도 빠짐없이 웃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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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번째 기억에서부터 엄마는 전업 주부였다.
아빠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꽤 적지 않은 돈을 버셨는데, 엄마는 본인이 전업주부라며 늘 검소하게 사셨다.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살던 미성년자때까지의 엄마는 그냥 아줌마일 뿐이었다.
짧은 컷트머리, 주부 습진을 달고 살던 손, 명품 가방 하나 없이 가끔 쓰는 설화수 화장품만이 조그마한 사치라며
화장품을 살때마다 기분 좋아했던 엄마.
우리가 모두 분가해서 텅 빈 집에서 웃을일이 별로 없다던 엄마.
내가 사준 루이비통이 젤 좋은 가방이라며 아껴 든다는 엄마.
환갑 기념 아빠한테 금일봉 천만원 받은걸 내게 반절 떼어준다는 엄마.
사진 속 엄마가 너무 소녀같고 예뻐서, 그럼에도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느껴져 슬퍼서 나도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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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이모들은 내 회사 근처로 와서 청담에 잘하는 성형외과 피부과 다니며
지방흡입이며 리프팅이며 쁘띠 거상이며 하고 갔는데, 울 엄마는 거기 쫄래 쫄래 따라다녀놓고선
본인은 얼굴이 이쁘니(?) 돈 안써도 된다고 했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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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조금 촌스럽고, 조금 우악스러운면이 있지만
때로는 소녀같고 아기같은 면이 있는 울엄마.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엄마가 원하는 만큼의 생을 즐겼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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