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2020. 9. 22.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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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 하루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내게 활력을 주는 황홀함이었으며
내 모든 감정의 원천이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인해
하루를 망치거나 하루를 성공했으며
기분 좋은 꿈을 꾸거나 눈물로 얼룩진 밤을 보냈다.

그것은 늘 나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을 원망하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으며
감히 그것의 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사랑이 결국 사라졌음에도
나는 그것을 그리워하고
때때로 내 안에서 작은 조각을 찾기도 했으며
마음 속 깊이, 아주 깊숙한 곳에 묻어놓은
그것의 잔향을 추억했다.

나는 그 사랑이 끝이 났을 때
내 인생에 다시금 불꽃이 지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몇번의 연애를 하고
그 애에게 했던 말처럼 타인과 몸을 섞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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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좋은 사람인것 같다.
편안하고 안기고 싶은 사람.
눈길이 가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조용하다.

죽을 것처럼 싸우고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고 싶은 관계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두사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안고 싶고 입 맞추고 싶은 남자.
살짝 주름진 눈가가 매력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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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즐겁지가 않아
기쁘지도 않다
간질간질하지도 않고
죽을만큼의 간절함도 없다.

오히려
온 몸을 감싸는 무력함 죄책감 우울함
나는 분명 사랑을 하는데
매일밤고요하다.
사무치는 외로움도 없고
한구석의 쓸쓸함도 없다.
그냥 담백하게 조용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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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장나버린걸까?
그토록 중요했던 자존심 싸움도
절대 입밖에 내지 않았던 미안하다는 말도
모두 물 흐르듯 쉽다
모든 서러운 말들이 투정으로 들린다
너는 나로인해 울고 웃는데
나는 네가 힘들게하면
너를 버릴 생각을 먼저 해.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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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를 버릴 생각을 해.
내가 망가지는게 싫어서
너를 버리는건데
이미 나는 망가져버린듯 해
무뎌진 마음은
누가 망가트린걸까?
소란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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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ystal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