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2022. 10. 21. 14:42

-

정말 쓰고 싶지 않았던 후기.

내 우울함을 털어버리는 쓰레기통인 이 곳에

과연 이런 내용의 일기를 써도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애타는 마음으로 검색을 해볼테고

이 글을 본 어떠한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그것으로 의미를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된 ...

항문 농양 배농 수술 후기.

 

-

그러니까 며칠전에 아주 하루 밤을 꼴딱 새고

야근을 아주 건실하게 하다보니 면역력이 똑 떨어졌다.

입에 혓바늘이 토토톳 생겨서 신 과일은 쳐다도 안볼 무렵

아침에 샤워를 하며 엉덩이 쪽을 씻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부드럽고 맨질맨질해야할 항문 근처 피부가 야약간 딱딱해진 느낌을 받았다.

뭐지? 싶었지만 그냥 근육이 뭉쳤나 싶어 넘어갔다.

다음날 다시 샤워를 하는데 여드름? 종기?처럼 모양이 잡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약간 이물감이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이때 병원에 갔어야 했음)

이틀 뒤, 환부에서 통증을 수반한 열감이 느껴져서

스스로 짜내볼라고 하다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생각보다 큰 일임을 직감하고 바로 병원에 갔다.

 

-

처음 가본 항외과는.. 어색했다.

그나마 손님이 많고 내 또래 남자들이 몇 명 있었다는게 위안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입장 했고,

내 증상을 말하자 마자 선생님은 안타까운 얼굴로

아.. 이틀이 넘으셨다구요..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일단은 수술을 피하실 수는 없을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먼저 환부를 봐 보자고 하셨기에 속옷을 벗고

유명한 새우자세를 취한 뒤..

간단히 속살을 벌려 쓱 보셨다.

1분도 안걸렸다.

항문 농양이 맞고, 외과적 처치는 무조건 해야하며

초음파를 본 뒤 치루 근본 수술을 하던 아니면 배농만 하던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방을 옮겨 초음파를..보았다.

아주 낯설고 매끄러운 침입자였다.

계속해서 힘을 빼라고 하셨지만

어떻게 힘을 빼나요 선생님

저는 그런거는 할 줄 몰라요.

 

초음파 상으로 판독 결과 치루까지 악화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애매하다고 하셨다.

일단은 배농을 해보고 경과를 보자고 하셨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응급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그냥 병원 잠시 다녀온다구 하고 나왔는데...

 

선생님 저 회사에 그냥 잠시 나갔다가 온다구 했어요.

이따 일곱시에는 진료 안하시나요?

... 아니면 내일은 진료 안하시나요?

마음에 준비도 안됐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의사선생님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하셨고

(스케쥴이 빡빡했다. 응급이라서 넣어준거라구..)

어차피 큰 수술은 아니라서 일상생활 가능하다기에

얼떨결에 그냥 알겠다고 해버렸다.

 

-

작은 병실에서 올 탈의를 하고 가운을 입고있으니

수술실 간호사가 나와서 수술실로 안내하며 간단한 설명을 했다.

오늘 할 수술은 배농 작업이고, 5-10분정도 걸리며

수술이 끝나고 15분간 경과를 지켜보다 이상이 없으면 퇴원이라고했다.

나는 업무 중에 잠시 자리를 비운것이기에 입원하지 않고

바로 퇴원할 수 있다는것에 감사해하는바람에

고통이 얼마나 되는지는 묻는것을 깜빡했다.

 

손가락에는 펄스 옥시미터를 끼우고

머리도 잘 묶어서 모자를 썼다.

마사지 받듯이 뒤집어 누워있으니

수술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엉덩이를..벌려서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매우 수치스러워서 심장 박동 수가 미친듯이 올라갔다.

삐삐삐ㅣ삐삐삐삐ㅣ삐ㅣㅣㅣ삑 하는데

와 순간적으로 엉덩이 벌리고 있는것보다

엉덩이를 벌리니까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간다는것을

남들에게 들킨게 더 미칠거같았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아보이면 뭐해

심장 박동이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맥박이 아주 미친듯이 날뛰었다.

선생님은 매우 익숙하다는 듯이 모른척하시며

(프로셨다)

환부만 보일수 있는 구멍 뚫린 천을 덮어 주셨다.

조금 맥박이 돌아왔다.

 

수술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후기를 찾아봤는데

꼬리뼈 마취를 한다느니, 척추 마취를 한다느니해서

매우 긴장했었다.

환부에 부분부분 마취주사를 놓는다느니 하는 블로그도 봤기에

염증에는 마취주사도 잘 안들을텐데 아프면 어쩌지 걱정을 엄청 했으나

걱정이 무색하게 그냥 일반적인 엉덩이 주사였다.

다만.. 아팠다.. 주사가..흡

 

5분정도 지난 후 의사 선생님이 입장하셨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술이 시작됐다.

(아마도 나만 어색하게 느껴졌을지도..)

수술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내 맥박은 끝도 모르고

빠르게 뛰었고, 그걸 소리로 듣고 또 긴장해서

맥이 더 빨라지고 아주 악순환이었다.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는것을 아셨는지

(귀가 있다면 모르셨을 리 없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스몰톡을 거셨는데

내용은 마취를 했지만 수술하면서 딱 1초간 두번 아프다.

그거는 어쩔수 없다고 참아야 한다 하셨다.

그리고 정말 딱 1초씩 2번 아팠다.

내 생각에 전기로 소작하는것 같았다.

다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덜 아파서

(예전에 산부인과 처치 중 지혈이 안돼서

마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 소작 경험 있음 - 인생 최악의 고통)

자연스럽게 이정도쯤은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심박수는 미친듯이 올라가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기 때문에

쪽팔림은 여전했다.

 

아픈 2초가 지나가고도 뭘 하시는지 한 5분정도는 처치를 하신것 같다.

정말 하~~~나도 안아팠다. 마취 주사가 제일 아팠을 정도로. 

수술 자체는 끝났고 뒷처리를 간호사 선생님이 해주셨다.

거즈를 끼워주셨는데 이물감이 심했다.

그래도 내일까지 끼우고 있으라고 하셨다.

처치 후 내발로 걸어서 대기실로 걸어갔다.

 

수술 자체는 체감상 7-8분 정도 걸린 것 같고

수술 준비시간~처치시간 해서 10분 걸렸다.

끝나고 나오니 수술실 들어간 시간에서 딱 20분 지나있었다.

십오분 정도 혼자 누워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오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거즈와 항생제, 진통제를 주시며

후처리 설명을 해주셨다.

테이프로 거즈를 막 감아놨는데 제가 떼나요?

하니까 내가 떼도 된다고 하셨다.

진통제도 아플때만 먹으라구 4정 밖에 안주셨다.

아까 보니까 병원에 전부 남자들만 있던데

남자들이 고통을 잘참아가지구 이렇게 셀프가 많은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개 쎈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항외과.

 

-

수술 후 다음날부터 좌욕도 하라고 했고

사흘 뒤에 내원해서 경과를 보자구 하셨다.

마취주사가 안 깨는건지 안아파서

걷는것도 어기적 어기적 안걷고

똑바로 잘만 걸었다.

그리고 회사로 바로 복귀해서 여섯시간 동안 앉아서 일했다.

 

수술 후 3시간 쯤 지났을까

마취가 풀리는건지 진짜 수술보다 더 아파가지구

진통제를 바로 먹었다.

 

남편에게 수술 후기를 들려줬는데

남편은 주사 극혐자이자 엄살쟁이인 내가

마취주사가 제일 아팠다고 하는거 보니

아주 쉽고 안아픈 수술이었나보다고해서

등짝 스매싱을 때려줬다.

 

-

일단은 수술 부위의 감염이 없기를 바라고

잘 아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과를 보러갔을때

그.. 치루 수술까지 안하는게 베스트 시나리오.

 

-

생각보다 단순 배농 수술 후기가 없기에

구구절절 적었는데

쭉 읽어보니까 정보성 후기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개쪽팔렸는지에 대해 쓴 것 같아서

비공개로 하고 싶지만...

그래도 일단 썼으니 올려는 본다.

얼마뒤에는 비공개 할지도 모르겠다.

 

-

여러분 농양에도 골든타임이 있답니다.

항외과 무서운 곳 아니었어요.

그리고 진짜 아프면 남의사든

남간호사든 항외과든

아무것도 신경 안쓰입니다.

 

가세요 항외과

지키세요 항문건강

'오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증의 피임약  (0) 2023.01.13
주저하지 않고 선택 할 수 있어 나는  (0) 2022.11.11
그러니까 내 말은,  (1) 2022.10.19
이월의 봉은사  (0) 2022.03.01
귓가에 들리는 물방울 소리에 시선을 뺏겨버리고  (0) 2022.02.24
Posted by krystal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