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2016. 6. 5. 13:19

나는 예뻐지고 싶었다.
예뻐서 예쁨을 받고 싶었다.
세상은 언제나 예쁜 여자에게 관대했다.
나는 항상 시선의 끄트머리 어딘가 쯤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나는 소원했다.
내게도 관대한 세상을 가지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그닥 예쁘진 않았던 나는
그나마 마른 체형으로 평균즈음은 했었던 것 같다.
귀여움의 범주에 들어있었달까.
그러다 인스턴트 식품의 맛에 길들여지게 되고
야식에 빠지며 급격히 체중이 불어나게 되는데
이 때를 터닝 포인트라 하겠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조언을 빙자한 망발을 내뱉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괴물같고 (살이 쪄서)
여자도 아니며
눈도 없고(지나다니는 여자와 비교 된 단 의미)
게으르고(게을러서 살이 쪘다)
못생겼으면 성형하고 살을 빼야하는데 그 노력조차 안하는
세상을 모르는 성인 여자였다.

 

세상이 나의 몸무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채찍같은 시선과 칼 날같은 혀로 나를 재단했다.

 

엘렌이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세상엔 이십대 여성은 44를 입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55를 입으면 그나마 중간은 간 거고
66은 뚱뚱해서 살을 빼야하고
77은 아예 매장에서 사이즈도 없다.

 


 

그래서 였을까 뚱뚱한 내가 화장에 집착하게 된 건.
물론 화장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살이 쪘지만 최소한 예뻐지려고 노력은 한다"
이런 의견을 세상에 피력하고 싶었던 걸까?

다행스럽게도 화장을 한 나에게 세상은 조금쯤 틈을 내주었다.

아주 불행하게도 화장을 한 나에게 세상은 조금쯤 틈을 내주었다.

겨우 시선의 끝에 서게 된 나는 그 친절에 중독되었다.

예뻐지려 온갖 투자를 하고
'그냥 예뻐지면 좋으니까'라는 합리화를 해댔다.

이상한 프레이밍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애인이 아무리 민 낯이 예쁘다고해도 데이트를 할 때 꿋꿋하게 화장을 했다.
(물론 이 친구도 살에 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빼라는 얘기라고 생각 한다면 과대망상일까)

 

이력서 사진을 찍으려 큰 돈을 주고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포토샵으로 떡칠을 한 나를,
내가 아닌 나를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야.

이제는 조금 지친 것 같다.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게 내가 줄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인정하고 싶다.


나는 그냥 못생겼고 살이 쪘다.
이런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아, 마음이 1g 쯤 가벼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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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rystal92